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이다. 그러기에 예수의 탁월한 질문에 분명하고 명쾌한 대답은 우리의 사역이다.

  우리들의 삶에는 아픔이 있다. 육체적인 아픔 뿐만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내면의 아픔 상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픔까지 아픔 없는 삶은 없다. 더 더욱이 아픔의 출발점이 죄라면 아픔의 폭발력은 사망까지 이르게 하며, 인간의 출발은 끝이 없었으나 종국에는 인간을 끝에 서게 한다. 그러나 끝에 서 있는 인간을 영원이라는 세계속으로 이끌고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아픔을 해결하시고자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시어 우리 모두의 아픔을 해결하셨다. 그렇다면 아픔이 없는 인생은 없으며 그 아픔을 가진 자들을 향하여 예수의 질문은 오늘도 우리에게로 던져진다.“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의 질문에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대답한다. 너무나도 당연하다. 아픔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질문하셨을까?

  긍휼의 집이라 불리는 베데스다 연못에는 아픔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들이 이 연못에 모인 이유는 낫고자 하는 열망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나 그 연못에 있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라 단지 미신이기에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맞는 것 같지만 맞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를 도우신다. 가진 자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빈손을 사용하시며, 내가 채우지 않은 빈 곳을 채우시는 분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을 때 채우심의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

  낫고자 하느냐 라는 질문 이후에 예수께서는 낫는 방법을 가르치시는데, 그 가르침을 보면, 위로도, 격려도, 부탁도, 권면도 아니라 오직 명령이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면 좋고, 안 하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순종이라는 대답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순종이 없으면 나음도 없고, 은혜도 없고, 기적도 없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하며, 순종은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순종은 내 삶의 전부이다.

  우리의 삶이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라면 일어나야 한다(Stand up). 일어남이 없으면 아픔은 사라지지 않으며, 해결됨이 없다. 또한 명령을 수행할 때 가짐(Pick up)은 흔적까지 메우시려는 주님의 마음이다. 그리고 가야 한다(Walk)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가는 Walk이다.